마른 잎 다시 살아나
안치환 작사, 작곡, 노래
노무현은 독재/민주의 대립구도로 보면 민주주의를 정말 실현하려고 애썼고 성과를 냈던 사람이다.
그러나 자본/반자본의 구도로 보면 신자유주의를 퍼트린 사람이다.
그래서 난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행보를 지지하면서도 신자유주의의 전파에 대해서는 화가 났었다.
독재보다는 자본이 더 무섭다고 생각하니까.
노무현이 자살했다.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북받히면 펑펑 소리내며 울기도 했다.
그렇게 울면서 참 당황스러웠다.
내가 이렇게 노무현을 좋아했었나?
내가 노무현이라면....
생각해보니 그의 선택이 이해가 간다.
그에 대해 가해지는 변태적 공격에 방어하면 할 수록 자기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와 멀어지는 구조.
그 구조를 깨는 방법이 없는 가운데 자기의 가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
그건 자신을 버림으로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뿐.
정치적 타살에 대한 살인죄를 이명박에게 우리는 물어야 한다.
체 게바라.
라틴아메리카를 식민지화 하고 싶은 미국은 그를 눈엣가시로 생각했고 그를 죽였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나서 라틴아메리카가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갔는가.
체는 그렇게 죽음으로써 3세계의 혁명의 씨알이 되었다.
노무현.
눈물로 보내면 우리는 그를 살리지 못한다.
우리의 눈물이 한낱 싸구려 감상이 아니라면 그의 가치를 살려야 한다.
물론 가치는 여기서 그의 신자유주의 전도사로서의 가치가 아님은 명백하다.
노무현의 가치는 민주주의다.
정말 이제는 21세기 독재/민주의 낡은 구도가 끝났고, 더 힘든 자본/반자본의 구도에 들어섰다고 생각하고 있을 즈음에 그의 죽음은 다시 독재/민주주의의 구도가 유효함을 말하고 있다.
자본이 독재보다 훨씬 교묘하고 힘든 상대임은 알지만,
그보다는 민주주의가 우선이다.
정치적 타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검찰의 편집증적인 수사. 피의자의 인권을 일부러 말살하는 수사방식.
그리고 그 뒤에 모든 것을 용인, 아니 조장한 이명박정권.
이 책임이 제대로 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에겐 짱돌, 아니 혁명이 필요한 시기일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