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히 돈 벌련다.
25일 밤 후원의밤은 후원주점을 기본으로 운영되며, 매 정시엔 미니 공연들이 열리는 방식이다. 요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어딜 가도 한숨뿐인데 이날만은 참 오랜 만에 함께 웃으며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대개 이런 행사에 가보면 이름 난 인사들은 그런 인사들끼리만 어울려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그것도 좀 바꾸어보고. 그런데, 후원주점이란 일단 손님이 많이 와야 하는데 지면광고 같은 걸 할 형편도 아니라 알리는 데 영 한계가 있다. 그래서 정중히 부탁드린다. 이 웹전단을 널리 널리 전파해주시길. 블로그나 홈피 운영하는 분들은 올려주시고. 아, 트위터에도. ^^ 웹전단 원본 내려받기

이용시간
평일 10:00~18:00 *이 외의 시간에 이용을 희망할 경우는 미리 연락주세요.
http://cafe.daum.net/tokyobooks
위치: 다카다노바바高田馬場역에서 3분
〒171-0033東京都豊島区高田3-15-7 第一大島ビル202号 EZ留学(コンビニ2階)
대여비는 무료입니다만, 책한권당 보증금 1,000엔 받습니다.
보증금은 책을 다시 반납하면 그 자리에서 반환합니다.
책 기증을 받습니다만, 아무 책이나 다 받지는 않습니다.
실용서적 사양하구요^^
오른쪽으로 너무나도 기울어져 있는 대한민국을 조금이라도 균형잡을 수 있는 책이라면 환영합니다.
예약 연락은....카페를 이용해주세요. 조만간 독서토론회...등도 실시할 예정입니다.
대여 가능한 책 (책 보유현황)
대한민국사 1.2.4권, 한홍구
나를 배반한 역사, 박노자
단절의 세기 증언의 세대, 서경식/다카하시 테츠야
꿈꾸는 간디학교 아이들, 양희규
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 박노자
당신들의 대한민국 1.2권, 박노자
내나라를 찾아서, 최선애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훌츠
오리엔탈리즘, 에드워드 사이드
문화와 제국주의, 에드워드 사이드
소수성의 정치학, 부커진R
미래를 여는 역사,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
세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홍세화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박노자 외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남자의 탄생, 전인권
촘스키 그 끝없는 도전, 로버트 바스키
기억과 역사의 투쟁, 당대비평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레즈를 위하여, 황광우 장석준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강상중
내셔널리즘, 강상중
우리 역사 최전선, 박노자 허동현
신영복 함께 읽기, 여럿이 함께 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피할수 없는 야스쿠니 문제, 다카하시 테츠야
빨간 신호등, 홍세화
시원으로의 회귀, 송호근 서병훈 편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일본전후정치사, 이시카와 마스미
한강 1.2.3.4.5.6.7.8.910, 조정래
광기의 역사, 미셀 푸코
계몽의 변증법, 아도르노/호르크 하이머
내몸 사용설명서, 마이클 로이젠/메멧 오즈
교양으로 읽는 법 이야기, 김 옥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 엘리스 워커
언문세설, 고종석
카탈로니아 찬가, 조지 오웰
은박지에 새긴 사랑, 김남주 번역 시집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김남주 번역 시집
난민과 국민사이, 서경식
여자놀이, 우에노 치즈코
원숭이와 초밥요리사, 프란스 드발
B급 좌파, 김규항
나는 왜 불온한가, 김규항
인류의 미래, 워런 와거
처음처럼, 신영복
엽서, 신영복
일본역사를 바꾼 조선인, 정수웅
시민사회와 시민운동1.2권, 유팔무/김호기/김정훈
참호에서 보낸 1460일, 존 앨리스
도모유키, 조두진
물리학이란 무엇인가, 도모나가 신이치로
낯선땅 이방인, 로버트 하인라인
비트겐슈타인은 왜 말놀이판에 나섰을까, 양운덕
그래도 농촌이 희망이다, 박진도
다부진 나라 스위스에 가다, 구니마츠 다카지(노시내 번역^^)
고민하는 힘, 강상중
돈 까밀로와 지옥의 천사들, 죠만니노 과레스키
아. 입이 없는 것들, 이성복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황지우 시집
전야(前夜:일본어)1.2.3.4.5.6.7.8.9.10.12권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53&articleId=50707
위 주소에서 펌. 위 주소에는 동영상도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어록>조선일보관련
조선일보는 이미 신문도 아니고, 언론도 아닙니다.
(2001.6.28 민주당보와의 인터뷰)
조선일보와 싸우는 것은 민주화운동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일보의 상품성과 신뢰도를 높여주는 인터뷰는 할 수 없습니다.
(2001.11.19 노무현 홈페이지 무현생각에서)
조선일보가 극심한 왜곡, 편파보도를 중단하지 않을 경우에 최후의 수단으로서
나의 지지자들과 함께 조선일보 불매운동을 전개할 것입니다.
(200111.19 노무현 홈페이지 무현생각에서)
조선일보는 공정한 보도를 하지 않는 신문입니다.
친일경력과 군사독재정권과 결탁했던 과거가 있는 신문입니다.
기득권층의 편에 서 있는 신문이고, 중산층과 서민에게 적대적인 신문입니다.
그들이 왜곡보도를 하는 한 국민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언론의 정도를 벗어난 신문과 어떻게 인터뷰를 할 수 있겠습니까?
조선일보의 영향력을 깍아내려야 합니다.
(2001.12.3 오마이뉴스 인터뷰)
조선일보는 권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서워서 그 앞에서 슬금슬금 피합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여기 조금 철없는 것처럼 싸우는 정치인 한 사람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2002.2.20 오마이뉴스 인터뷰)
저는 조선일보 사장님 회장님처럼 그렇게 고상한 말만 쓰고 살지 않는지 모르지만 그분들처럼
천황폐하 모시고 일제에 아부하고 군사독재 정권에 결탁해서 알랑거리고특혜 받아가지고 뒷돈 챙겨서
부자가 되지는 않았습니다.그렇게 기회주의적인 인생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2002.6.30 경기도 시흥시 지방선거 지원연설에서)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안치환 작사, 작곡, 노래
노무현은 독재/민주의 대립구도로 보면 민주주의를 정말 실현하려고 애썼고 성과를 냈던 사람이다.
그러나 자본/반자본의 구도로 보면 신자유주의를 퍼트린 사람이다.
그래서 난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행보를 지지하면서도 신자유주의의 전파에 대해서는 화가 났었다.
독재보다는 자본이 더 무섭다고 생각하니까.
노무현이 자살했다.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북받히면 펑펑 소리내며 울기도 했다.
그렇게 울면서 참 당황스러웠다.
내가 이렇게 노무현을 좋아했었나?
내가 노무현이라면....
생각해보니 그의 선택이 이해가 간다.
그에 대해 가해지는 변태적 공격에 방어하면 할 수록 자기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와 멀어지는 구조.
그 구조를 깨는 방법이 없는 가운데 자기의 가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
그건 자신을 버림으로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뿐.
정치적 타살에 대한 살인죄를 이명박에게 우리는 물어야 한다.
체 게바라.
라틴아메리카를 식민지화 하고 싶은 미국은 그를 눈엣가시로 생각했고 그를 죽였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나서 라틴아메리카가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갔는가.
체는 그렇게 죽음으로써 3세계의 혁명의 씨알이 되었다.
노무현.
눈물로 보내면 우리는 그를 살리지 못한다.
우리의 눈물이 한낱 싸구려 감상이 아니라면 그의 가치를 살려야 한다.
물론 가치는 여기서 그의 신자유주의 전도사로서의 가치가 아님은 명백하다.
노무현의 가치는 민주주의다.
정말 이제는 21세기 독재/민주의 낡은 구도가 끝났고, 더 힘든 자본/반자본의 구도에 들어섰다고 생각하고 있을 즈음에 그의 죽음은 다시 독재/민주주의의 구도가 유효함을 말하고 있다.
자본이 독재보다 훨씬 교묘하고 힘든 상대임은 알지만,
그보다는 민주주의가 우선이다.
정치적 타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검찰의 편집증적인 수사. 피의자의 인권을 일부러 말살하는 수사방식.
그리고 그 뒤에 모든 것을 용인, 아니 조장한 이명박정권.
이 책임이 제대로 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에겐 짱돌, 아니 혁명이 필요한 시기일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유치원 보모들의 파업
독일에선 지금 유치원, 어린이집 보모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전국적으로 무기한 동맹파업에 돌입했다. 맞벌이 부모들은 갑자기 아이들을 맡길 곳을 달리 찾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며 고충을 토로하고 있지만 동맹파업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분위기다. 독일에서 유치원 보모라는 직업은 대우와 월급이 아주 낮은 직업군에 속한다.
이 불경기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아이들을 볼모로 다른 서민층을 압박한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번 파업의 가장 막강한 지지자는 연방 가정부 장관이다. 7명의 자녀를 둔 여성 장관은 돈을 들여야 좋은 서비스도 바랄 수 있는 거라며 공개적으로 노조의 편을 들고 있다. 부디 동맹파업이 성공하여 유치원 보모들의 처우가 개선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아이들을 위해서, 독일의 미래를 위해서.
대학생들의 데모
원래 독일에는 대학 등록금이라는 게 없이 무상 교육이었다가 2007년부터 한 학기에 500유로(80만원)의 등록금을 받고 있다. 교육의 균등한 기회를 박탈하는 제도라 하여 이에 반발하는 데모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헌법재판소에 학생들의 단체소송도 걸려 있는 중이다. 등록금 징수 이후로 집안이 가난한 학생들의 대학진학율이 줄었다는 보고가 있다.
교육의 기회가 불평등한 나라는 장기적으로 불안한 나라다. 인적자원을 완전히 활용하지 못하여 국제경쟁에서 뒤처질 것이고, 사회의 이분화를 불러 감정이 앞서는 유혈혁명의 불씨를 심기 때문이다. 유혈혁명을 방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독재가 아니라) 모든 이에게 희망을 주는 제도를 향한 변화이다. 나는 우리나라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아무 생각 없이 작금의 교육지옥을 견디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변화를 기다리고 있고 기대하고 있다.
링크: 지난 5월 13일 뮌헨의 데모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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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 빨간 치마네(http://www.hanamana.de/hana/index.php?option=com_frontpage&Itemid=1)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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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얼마나 꽉 막힌 비정상적인 사회인지 다시 한번 느낍니다.
특히 20대.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짱돌을 들어라.
뉴스를 보는 순간 살짝 눈물이 맺혔다.
예전 선거(그땐 민노당) 때에는 한국통장에 돈 다 선거비로 넣고 그랬었는 데 비해서...
이번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또 막판까지 팽팽한 후보단일화로 얼마나 가슴 졸이게 했던지.
진보신당의 약진을 기원한다.
그게 대한민국 상식이 통하는 나라로 되는 길이다.
약자의 눈으로 돌아본 세계.
가끔은 자기 성찰의 느낌이 너무 강해 착취를 강요한 지배자에게 향해야 할 에너지가 분산된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신영복이다.
신영복에게서 끝없는 자기 성찰을 빼고 생각할 수는 없으니까.
추천.
라틴아메리카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일본에 왔지요.
일본에 아는 형이 한국가면 쑥을 좀 가져오라고 하더군요. 쑥차 같은 거 마시고 싶다고..
출장이라 쑥을 찾으러 다닐만큼 시간도 그리 많지 않고 해서 집에다가 부탁을 했지요. 어차피 한국에 왔으니까 집에는 얼굴 한번 비춰야겠고, 미리 준비해 놓으면 시간도 절약되고 좋겠다는 마음에서요.
어머니는 아들이 쑥 먹고 싶다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동네 아주머니 한분과 산에 쑥캐러 가셨더랬습니다.^^;;;
열심히 캐고 같이 간 아주머니가 캔 쑥도 사고...
집에 갔더니 제가 일본에 가지고 갈 쑥을베란다에 말리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쑥국도 만들어 놓으셨더군요.
쑥국 참 맛있대요^^
어머니가 쑥차를 끓이는 방법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합니다. 요렇게 저렇게 해서 끓이고 어쩌고....나중에 꿀을 넣으면 좋다고 꿀까지 한병 챙겨놓았습니다.
열심히 쑥캐고 신나게 설명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차마 내가 먹을려는 쑥이 아니라는 말을 못하고 그냥 잘 먹겠다는 말만 했더랬습니다.
내일 쑥을 부탁한 형을 만납니다. 술한잔 쏘라고 해야겠네요.
근대화 시대였다고 주장합니다.
자신들을 친일파라고 부르지 말고 근대화 세력이라고 불러 달랍니다.
자신들을 군사독재 세력이라고 부르지 말고 근대화 세력이라고 불러 달랍니다.
그들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친일 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됐지',
'독재 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됐지' 그리고 이명박을 밀어줍니다.
'범죄자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돼지', '사기꾼이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돼지'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이게 먹힙니다.
마침내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었고, 뉴라이트는 새로운 정부의 각료로 곳곳에 포진되었습니다.
이들은 지금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 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식민지 시대,
독재 시대를 근대화 시대로 바꾸겠노라고 수정하고 있습니다.
일제시대 친일파-자유당-공화당-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았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이들이 권력을 놓친 시기는 딱 지난 10년간 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릅니다.
<다음......아고라...인용...>
토지와 태백산맥(한강이었는 지도 모르겠다.)에 똑같은 구절이 나오는 대목이 있다.
왜 노동운동이 정치성을 띨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언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평소에는 무시당하는 노동자들도 선거때만 되면 존경하는 국민이 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그 때를 활용하여 처우개선을 해야 하는 데, 이를 위해서는 자신들의 한표한표를 이용하여 정치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왜 노동문제와 당장 관련이 없는 정치사안에 대해서 노동단체가 나서는 지에 대한 인과관계의 설명이었다.
사이타마현의 우에다 지사와 전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이용수할머니의 면담이 3월1일 지사실에서 이루어졌다. 면담은 지사와 지사측 통역, 일본군 「위안부」피해자와 피해자측의 통역, 합계4명으로 응접실에서 비공개로 행해졌다. 이 면담은 시민 단체( 「전 일본군 「강제 위안부」이용수씨의 이야기를 듣는 모임」실행 위원회와 우에다 지사의 역사 인식을 묻는 현민 연락회)와 지사측과의 교섭에 의해 행해진 것이다. 시민 단체측은 지사와 본인만의 비공개면담은 기록의 공정함이 담보되지 않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시민 단체측의 책임자를 동석시킬 것을 요청했지만 지사 측에 거절 당했다.
이용수씨는 지사가 작년, 현의회에서 「위안부는 있었지만 「종군위안부」 없었다」라고 하는 발언에 대해 동년 10월에 대화를 신청했지만 무시당했었다.이번 면담은 이용수씨가 미국에서 행해진 「일본군 「위안부」문제로 일본 정부에 공식적인 사죄를 요구하는 결의안(미국 하원 결의안 121)」채택 시에 미국 의회 공청회에서의 증언후의 귀국 일정에 맞추어 시민 단체측이 지사 측에 신청해 성립한 것이다.
이용수씨는 지사에 대해 「지사는 강제적으로 행해진 「종군위안부」는 없다고 했습니다만, 나는 15세 때 일본군에 강제적으로 끌려가 위안부로 내몰렸습니다.내가 피해자로 보입니까」라고 질문했다.그 질문에 대해 지사는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그러나, 지사는 이용수씨에게 「마음이 아픕니다」(お気の毒です)라고 언급했을 뿐, 예의 「종군위안부」부정 발언에 대해서는 사죄하지 않았다.그리고 「위안부는 있었지만 「종군위안부」는 없었다」라고 말한 작년7월의 지사의 의견서를 일자도 바꾸지 않고, 자신의 의견이라며 그대로 이용수씨에게 건네주었다.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지사는 갑자기 이용수 할머니의 면담신청을 받아들인 것일까. 작년에도 면담신청을 했고, 작년10월에는 의회에까지 찾아갔으나 거절당했었는 데. 더군다나 의회입장시에 면담을 요청했을 때 그는 '방해하지마!'(邪魔するな!)라며 화를 냈지 않았던가.
미국의회의 결의안 채택도 그 원인으로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난 올해 7월에 치루어지는 지사선거가 주된 원인이라 생각한다. 사이타마 교직원노조를 비롯하여 유수한 사이타마의 시민단체들이 반대성명을 내었고, 선거를 앞둔 지사는 이를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노동운동은 물론, 사회적 약자가 소리를 낼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시간이 선거직전이고,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정치적 압박이 아니던가. 그래서 정치적 중립을 외치는 모든 사회변혁운동이 나에겐 공허하게 들린다.
지사선거를 앞둔 이런 민감한 시기이기 때문에 이용수 할머니는 지사를 만나 종군위안부는 없었다는 발언을 한 지사앞에서 일본군에 끌려간 자기의 경험을 들려주며 자기가 보이냐는 질문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면담은 그러나 여러가지 한계를 안고 있다.
철저한 비공개 면담이었다. 통역을 하기 전에 기록을 위하여 녹음을 해도 되냐고 물었지만 거절당했다. 또한, 면담후에 기자들의 사진촬영요청이 있었지만 이 또한 지사는 거절했다. 면담후의 기자회견은 각각 따로 행해졌으며 지사측의 기자회견은 시민들의 입장이 거부되었다.
지사의 종군위안부 발언의 취소나 당사자에게의 사죄도 받아내지 못하고, 어떻게 보면 지사의 계산에 휘둘려졌을 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지사가 이 면담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딱히 짐작이 가진 않는다.
앞으로 어떻게 이 면담을 자기 입맛대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은 있지만, 모든 운동은 정치성을 띄어야 한다는 명제의 유효성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종군위안부라는 명칭은 여기서는 지사가 말한 단어를 그대로 인용했기 때문에 사용했지만 여러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일본군'위안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라는 말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2007년 3월 5일.)
*후기
몇달 뒤에 사이타마 지사 선거가 있었다.
그때 시민단체들의 성명서 작성에 관여를 했는데, 나는 문제발언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가 없으면 선거와 연결시켜 행동하겠다, 즉, 각 시민단체의 이름으로 반대성명을 내고 낙선운동으로 연결하겠다는 문구를 넣었지만 결국 그러한 문구는 채택되지 않았다.
왜일까?
가장 자신들의 요구를 효과적으로 관철시킬 수 있는 시기였고 수단이었는 데.
왜냐하면 이들은 운동의 목적을 '사회변혁'보다는 '자기 양심에 충실'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런 부조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너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야...'
'난 이러이러한 일들을 했어.'
이들의 운동의 목적은 사회변혁이 아닌 자기만족이며 속칭 '딸딸이'에 지나지 않은 운동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보다는 양심이 있는, 백배 나은 사람임에는 분명하지만, 이런 자세가 자신들이 원하는 사회의 충분조건일까.
필벗중에 무장공비(http://blog.hani.co.kr/jpic3044/)라는 살벌한 아이디를 가지신 분이 다음과 같은 사재기에 관한 글을 남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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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세제가 떨어져서 대형마트에 갔다. 얼마전 한토마의 경제방을 기웃거리다 아고라에서 이사오신 많은 분들의 글들을 그져 눈팅만 하다가 줏어 들은건데 앞으로 경기가 많이 나빠질꺼고, 또한 달러의 강세로 생필품의 가격이 엄청 오를꺼라는 글을 본적이 있다.
그곳의 글들은 아주 비관적인 이야기들이 대부분 이였다. 될수 있으면 많이 사두라는 당부의 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세탁세제며 아이들이 주말에나 즐겨먹는 라면도 필요하고 화장지도 필요하고 섬유유연제도 필요한데.... 이것들은 매달 꼭 필요한 생필품들 인데 기왕 살꺼 썩지도 안는거 많이 사둘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이달에 필요한거만 사왔다. 라면 1BOX 장지 24롤에 덤으로 6롤 더주는거 한봉지 섬유유연제 5.2L짜리 3통 이게전부다. 세제는 마트가 너무 비싸서 다른곳에서 사기로 하고 오늘은 우선 이것들만 샀다.
몽땅해서 4만8천6백6십원. 다음달에도 필요한건데 기왕살꺼 많이 사야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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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위의 글에 단 나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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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재기해서 한국을 망하게 합시다.
지금 정도 충격으로는 다음 선거에 또 딴나라당이 집권합니다.
강한 충격이 있어야 기억력도 오래갑니다. 건망증을 이길려면, 그래서 생생히 기억해서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들려면 지금 한국이 망해야 합니다.
망해야 삽니다.
사재기 권장합니다. 작게는 개인적인 지출을 줄이고 크게는 대한민국을 구하는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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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조금이라도 나은 정권을 만들기 위해서....지금 대한민국이 더 망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건만...문제는 내가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이다.
비정규직 평균임금 119만원에 20대의 평균적 소득 비율 74%를 곱해 나온 88만원을 사용한 단어로, 우리나라 여러 세대 중 처음으로 승자독식 게임을 받아들인, 탈출구가 없는 세대들을 의미한다.
*먼저 경제학자의 글 답지 않게(?) 아주 쉽게 읽히고, 또한 문장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군데군데 경제학 이외의 분야에서도 적절하게 인용하는 센스.
마르쿠제, 하버마스, 듀르켐까지 ...
역시나(?) 저자는...유럽에서 파리에서 공부를 하였군.
보통 한국교육에서는 이런 글쓰기는 나오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간만에 좋은 책을 만났다.
어제 여기 일본에서 저자인 우석훈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소속정당을 물어보았다. (참고로 출판사가 레디앙이라서....대략 짐작은 갔다...)
그런데 소속정당이 없다고 한다. 예전에는 민주노동당이었는 데, 지금은 '없다고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정당을 밝히면 하도 일을 많이 시켜서 그런다고 한다.
같은 당원이면서 이것도 못해주냐...이러면서 말이다.
난 현명하게 대처하고 계시네요^^ 라고 답했다.ㅎㅎ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저자.
예전의 미국의 역사를 차근차근 되새겨보면서 지금처럼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실시한 적은 없었고, 그 결과 이렇게 불평등이 확대된 적도 없었다고 말한다.
불과 몇십년 전(1979년)만 하더라도 상류층의 소득세는 70%였는 데 지금은 35%에 불과하다.
가장 쉽게 그러나 거대하게 말하고 있는 통계하나.
<1988년 8학년이었던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한 비율>
| 성적이 하위 25% | 성적이 상위 25% | |
| 부모의 지위가 하위 25% | 3 | 29 |
| 부모의 지위가 상위 25% | 30 | 74 |
즉,
부모지위가 하위 25%이면서 성적도 하위 25%인 학생은 약 8년후 3%만이 대학졸업한다.
부모지위가 하위 25%이면서 성적은 상위 25%인 학생은 약 8년후 29%가 대학졸업한다.
부모지위가 상위 25%이면서 성적이 하위 25%인 학생은 약 8년후 30%가 대학을 졸업한다.(지위가 벌써 10배의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다.)
부모지위가 상위 25%이면서 성적이 상위 25%인 학생은 약 8년후 74%가 대학을 졸업한다.
성적이 하위 25%이면서 부모의 지위가 상위25%인 학생들은, 성적은 상위25%안에 들지만 부모의 지위가 하위 25%에 속하는 학생들에 비해 대학을 더 많이 졸업한다.
계급 세습이다.
미국의 상황이면서 한국에도 얼마든지 적용되는 내용들이다.
다만, 책이 미국의 정치상황을 어느 정도 미리 숙지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씌여져 있어 외국인인 나에겐 좀 이해하기가 귀찮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역대 대통령이 어느 정당에 속해 있는 사람인 지는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글이 진행되곤 한다. 책 앞이나 뒤에 미국 정치연표 같은 거 좀 붙여주지.
경제는 정치에 아주 크게 영향받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고,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진보정당(미국의 경우 민주당)을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사람의 말이니...맞겠지. ㅎㅎ
*진보주의자들은 불평등과 불공정을 막는 제도를 믿는 사람들이다. 진보주의 운동가들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그러한 제도를 보호하거나 확대하려는 정치적 집단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만약에 미국에 국민의료보험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당신이 의식하건 그렇지 못하건 간에, 당신은 진보주의자이다. 당신이 국민의료보험 추진을 위한 노력에 참여하고 있다면 당신은 진보주의자 운동가이다.
벌써 몇일짼가. 아마도 오늘도 붉은 눈으로 날 노려볼 것이다. 그렇다고 그게 두려워 건너뛸 수도 없다.
신문배달도 어느덧 손에 익어갈 무렵, 언제부터인가 벌겋게 나를 노려보는 시선을 느꼈다. 그 집에 신문배달가는 시간은 대략 3시반 정도. 조그만 동네공원이라고 하기엔 크나큰 나무와 우거진 덤불숲을 지나 홀로 서 있는 집.
우편함이 담벼락이 아닌 집 안에 있어서 밖에서 오토바이를 세우고 신문을 들고 들어가야 한다. (일본 담은 높이도 보통 가슴높이 정도로 낮고, 잠그는 장치가 없는 경우가 많다. 현관문만 잠근다.)
마당도 넓은 데, 수풀과 나무가 많아 야밤에 들어가면 상당히 무섭다.
꼭 사람형태를 한 나무와 바람이 불면 부시럭 소리를 나는 풀과 나무들. 사실 그 집에 가기 위한 길부터가 심상치가 않다. 비포장도로를 들어가 높디높은 나무들 사이를 달려가는 데, 가로등도 하나도 없다. 비마저 내리면 그 근처만 가도 일단 머리카락부터 선다.
(또 선배들은 얼마나 겁을 많이 주었던가. 신문 오토바이 뒤에 앉아있던 귀신이야기하며, 자살한 학생이 있는 학교에 신문을 넣을려하면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던지....)
몇일 전부터 그 집 구석에서 희미하지만 모퉁이 저쪽에서 벌겋게 빛을 내는 게 나를 노려보고 있다. 첨에 봤을 땐 신문을 놓쳐버릴 정도로 놀랬었더랬다.
그 후 매일같이 그 불빛은 나를 째려보았고, 난 그 집 근처만 가면 손바닥에 땀이 고였었다. 하루 이틀 신문돌리고 말것도 아닌데 이대로 계속할 순 없다고, 오늘은 기어코 결판을 낼 거라 다짐을 했다.
새벽안개가 숲을 감싸고 있고, 나의 오토바이소리만 외롭게 안개를 가르며 달리고 있었다. 저기 그 집이 보인다. 항상 을씨년스럽다. 어두컴컴한, 오래된 일본식 가옥.
오토바이에서 내려서 신문을 챙긴다.
내 심장은 태연한 척 하려는 내마음과는 별도로 경망스레 쿵쿵거린다. 대문을 열고 나무들 사이로 나있는 길을 따라 마당을 가로질러 우편함으로 갔다. 고개를 돌리진 않았지만, 오른쪽 모퉁이에서 예의 그 붉은 빛이 나고 있다는 걸 안다.
신문을 놓고, 몸을 쭉 일으키고 숨을 양껏 들이마신 뒤, 천천히 불빛쪽으로 몸을 돌렸다。꽉 쥔 두 주먹엔 힘이 들어가고, 허벅지에도 힘이 들어감을 느꼈다.
난 앞으로 얼마나 매일같이 네 앞에서 무서워해야 하는가. 오늘 내가 너와 담판을 지으리라.
한발 한발 다가선다. 붉은 빛은 때로는 숨기도 하며, 하지만 도망가지는 않고 제자리이다. 안개섞인 바람이 휘이잉 지나가고...
5미터, 4미터, 3미터...아직 놈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놈의 정체가 보일만도 하련만.
2미터....아직이다...놈의 1미터 앞까지 가서야 비로소 놈의 정체를 알았다.
그것은 '등'이었다. 일본식으로 마당귀퉁이에 세워져 있는 등신불 옆에 서있던 조그만 탑, 그안에서 붉은 전구가 빛나고 있었다. 그것이 주위의 나무와 풀때문에 바람이 불때마다 가리워졌다가 모습을 드러냈다가 하였던 것이다.
여태껏 내 머리속의 상상력은 얼마나 나래를 펼쳤던가. 고양이도 아닐 것이, 살쾡이일까. 아니면 시어머니의 구박으로 목을 매단 며느리의 억울한 혼령이 나에게 구원을 바라는 것일까. 때론 사람의 상상력이 육체를 구속하기도 한다.
긴장이 탁 풀어지면서, 요 몇일간 뒤도 보지않고 도망치듯 뛰어간 내가 우스워보였다.
다시는 너 때문에 쫄지 않으리. 한번 더 자세히 눈을 맞추어주었다. 찬찬히 살피고 나서 돌아서서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여태껏 한번도 뒤돌아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뒤를 돌아보기도 하였다.
오토바이에 올라타 엑셀레이터를 당기는 내 얼굴에는 자랑스런 승리자의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여기 일본땅에서 살면서...권리와 의무...에 대해 ...
얼마 전, 아는 형과 술을 한잔하고 늦은 시간에 전철을 탔다.
그 시간의 전철이 항상 그렇듯 만원전철이었고, 그 틈에 끼여서 여느때처럼 집으로 돌아오는 길...아니다...술집에서 그 형집에 밤새도록 퍼기 위해서 이동중이었다.
전철안에서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으며 이동하고 있는 데, 옆에 아저씨가 자꾸 몸을 밀치는 거였다. 만원전철이라서 그럴 수도 있거려니...하는 데...아무리 봐도 의도적으로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알짝 다시 나도 반응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더 노골적으로 무릎으로 치는 게 아닌가.
우리가 큰소리로 이야기했다거나, 술 냄새를 풀풀 풍기거나 한 것도 아니었건만...
그냥 우리들의 말이 한국어라서 그랬지 싶다. 그런 놈 가끔 있으니...
아뭏튼, 상대방이 일부러 밀치고 있다는 걸 확인하니 열 받았다. 그것도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툭툭 치는 것이었다. 키가 170정도 되었을까. 나보다 10센티정도 작았는 데, 손을 들어서 내가 손바닥으로 그 사람 머리를 찰싹 때려주었다. 그러면서 물어보았다. 왜 그러냐구. 싫은 게 있으면 말로 하지 왜 사람을 치냐구.
그 사람은 내가 그렇게 무식하게 반응할 지 몰랐는가 보다. 대꾸도 못하고 있다. 그래서 손바닥으로 머리를 더 쳤다. 당연히 옆에 있던 형이 말린다. 마침 전철이 섰고, 그 형이 나를 억지로 데리고 내렸고, 우리는 한칸 옆 차량에 다시 탔다.
참지 그랬냐는 말에 참으면 버릇된다고 이야기하다가 내려야 할 곳이 되어 내렸더니, 아까 그 사람도 내려서 가는 거였다. 뒤쫓아가서 잡았다. 넥타이를 잡아채고 아까처럼 다시 한번 쳐봐라고 들이밀었다. 옆에 형이 말리는 사이에 잽싸고 그 사람은 도망갔다.
그 날밤.
형과 나는 위 사례에 대해서 토론을 했다.
형은 그래도 패면 안된다고 그러고 그런 놈은 상대해 주지 않는 게 낫다고 했다.
난 그때 권리와 의무를 말했다.
일본땅에 살아가는 많은 외국인들. 어떤 이는 일본말을 잘 몰라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으며, 어떤 이는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비자문제가 걸려 당하고만 있다. 싸움나면 그 싸움에서는 이길지 몰라도 차후에 비자연장이 문제 될 수 있겠고, 재수없으면 생활기반 다 버리고 자기 나라 가야할 지도 모른다.비자에 문제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 짐싸서 가야 할 지도 모른다.
아까 전철에서 시비건 놈은 아마 내가 외국인이게 때문에 참고 있으리라는 가정하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만약 그냥 참고 있었다면 그 놈은 다음에 또 똑같은 짓을 할 것이다.
나는 제대로 된 비자를 가지고 있어서 무식하게 추방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따라서 그런 짓에 대해서 갚아줄 기본적인 자격이 있다. 그리고 그냥 당하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라도 그런 놈은 조져줘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다음에도 같은 일이 생긴다면 똑같이 반응할 것이라 그랬다.
대체로 배타적인 환경에 둘러싸여 사는 일본내 외국인(서양사람 제외)으로서, 위와 같은 일이 일어나면 꿀릴 것 없는 외국인들은 그런 놈들을 항상 조져줘야 하는 것이 외국인의 인권향상을 위하여 해야만 하는 의무임과 동시에 권리라고 했다.
그 형은 그날은 반대의견을 말했으나, 몇일이 지난 뒤 자신의 의견을 철회했고, 나의 반응이 옳았다고 했었다.
권리와 의무.


















